[5月]대외활동에 총장 허가 있어야?…학칙 개정 원해도 학생은 ‘소외’

국민저널 기사/FOCUS 2013.05.13 14:32

[5月]대외활동에 총장 허가 있어야?…학칙 개정 원해도 학생은 ‘소외’

<연속 기획-위기의 학생 자치, 길을 묻다> Ⅰ. 독재의 잔재 ‘학칙’ 언제까지 가나?

 

캠퍼스의 낭만을 채 누리기도 전에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대학 생활 4년, 적잖은 학생들은 더 많은 경험과 ‘스펙’을 쌓기 위해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린다. 조금만 둘러봐도 유수의 기업들이 주최하는 인턴십이나 공모전, 각종 정당이나 단체의 청년 활동 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활동의 기회는 곳곳에 널려 있다. 학교 안까지 밀려들어 온 각종 포스터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탐색하고 ‘스펙’도 높이라고 속삭인다.

 

학교도 사회도 모두 한목소리로 ‘진취적으로 도전하라’고 응원하는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런 대외행사에 참여하는 순간 학생들은 모두 자동으로 학생준칙 위반자가 된다. 비록 사문화되어 엄격하게 적용되진 않는다지만, 사전에 총장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우리학교 학생준칙 제14조 ‘학생으로서 대외행사에 참가하고자 할 때에는 총장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를 위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정당이나 회원단체에 가입은 했지만, 아직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요?” 안타깝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다. 우리학교 학생준칙엔 ‘정당이나 회원단체에 가입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학생준칙 13조)도 있다. 지난 대선 기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뛴 학생들은 졸지에 학생준칙 위반자로 낙인찍힐 판이다.

 

이처럼 우리학교에는 오늘날 대학가의 세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법규가 다수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 이미 사문화되다시피 한 준칙들이지만, 법을 집행하는 주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것을 근거 삼아 학생들을 처벌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이들 조항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전면 개정 또는 삭제해야 할 대상으로 지적받았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6년이 흐른 지금까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유신 치하서 만든 학생준칙

마지막 개정은 14년 전 이뤄져
교직원 요구 때 학생증 제시에
교표는 왼쪽 가슴에 달고
‘총장 또는 학생처장 허가’까지
비민주적 시대의 잔재, 여전히 ‘유효’

 

1948년 제정된 우리학교의 학칙은 그간 105차례에 걸친 개정을 거쳐 현재 총 5편(▲1편 학교법인 ▲2편 학칙 ▲3편 직제 ▲4편 학사행정 ▲5편 기타)으로 구성된 규정집에 속해 있다. 학칙을 살펴보면, ‘21장 학생활동’에서 학생회, 학생회비, 집회, 학생간행물 등 학생의 기본적인 권리와 행위를 8개 조에 걸쳐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이를 추상적으로 서술해 놓고, 자세한 사항은 세부 규정에 위임한 것이 특징이다. 본지 취재 결과 학생활동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세부 규정은 학생준칙, 학생준칙 시행요강, 학생자치활동 지원에 대한 내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중심에 놓을 수 있는 학생준칙은 유신 정권 치하인 1974년에 제정된 이래 마지막 개정이 14년 전인 1999년에 이뤄졌다. 오랜 기간 방치돼 있다 보니 오늘날 헌법 이념과 거리가 먼, 구시대적 잔재가 다분히 들어 있다.

 

준칙 2조는 ‘학생은 교내외를 막론하고 항시 학생증을 휴대하며 교직원으로부터 요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이를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70년대 경찰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시민을 대상으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던 불심검문과 빼닮았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교표를 왼쪽 가슴에 달 것(준칙 5조)을 의무로 못 박아 놨다. 이 밖에도 집회 개최·인쇄물 배포·대자보 부착 등에 대해 총장 또는 학생처장의 허가를 받도록 적시함으로써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학생학칙개정운동 준비위원장을 지낸 박현서(이화여대 법·06)씨는 “대학가에 존재하는 학칙은 학생 사회를 통제하고 탄압하기 위해 유신 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매우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조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비공개 규정으로 학생자치권이 침해받는 사례도 속속 발견됐다. 지난해 10월 25일 부실대 대책위 주최 비상학생총회에서 ‘동아리 지도교수 의무제 폐지’를 안건으로 올렸던 최희윤(경영·08)씨는 “방학 중 공연을 기획했던 한 동아리가 지도교수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습실을 대관하지 못해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며 “직접 이에 관한 규정을 알아보기 위해 학생지원팀에 찾아가 열람을 요청했으나 ‘기밀이라 보여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규정 내용이 비밀에 부쳐지니 기준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된다. 지난해 법과대 학생회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대자보를 게시하러 학생지원팀을 찾아가 신청했는데, 담당 교직원이 지도교수의 직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더라”며 “학생회는 지도교수가 없어 결국 학부장 교수의 직인을 얻어 대자보를 게시할 수 있었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학칙 개정에 학생 설 자리 없다
그나마 학생 참여 보장된 ‘대학평의원회’
평의원 11명 中 학생은 ‘2명’

개정안 의견 수렴은 받는다지만
홈페이지 7일 공고로는 “짧다” 지적

 

이렇듯 학칙은 학생들의 활동을 폭넓게 제한하고 있지만, 이를 개정할 때에는 정작 이해 당사자인 학생이 참여할 여지는 극히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칙을 개정하려면 교무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학평의원회가 개정안을 의결해 규정심의위원회에 부치고, 이를 법인이 승인하면 총장이 최종적으로 공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학생에게 참여권이 보장된 기구는 대학평의원회다. 이곳에는 총학생회가 추천하는 학생 평의원이 2명 들어간다. 그러나 전체 11명의 평의원 중 교직원만 무려 6명으로 과반수를 훌쩍 넘어 학생의 발언이 지니는 무게감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

 

물론 학교는 학칙을 개정할 때 홈페이지 게시 등의 방법으로 7일 이상 개정안을 공고해(학칙 84조 2항) 의견 수렴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홈페이지 공고 기간을 7일(일주일)에 딱 맞추는 편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를 매일 같이 방문하지 않는 이상 학칙 개정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너무나 짧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이 학칙 개정에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요원한 셈이다.

 

올 초 한양대 학생단체 ‘청춘과 지성’이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초청해 특강을 개최하려다 학교 측이 제동을 걸었다. 덕성여대 당국은 총학생회가 열려던 ‘진보 2013’ 강연회를 저지하려고 버스까지 동원해 정문을 가로막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의 행태는 정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들어 있던 학칙이 ‘합법’이라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서 학칙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이유다.

 

박현서 전 대학생학칙개정운동 준비위원장은 “학칙이 사문화됐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학교 당국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자치활동에 대해선 학칙을 꺼내 들 소지가 다분하다”며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학교가 자의적으로 적용하지 못하도록 학칙 개정을 이뤄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주무 부처 교육부는 “나 몰라라”

일각선 ‘학생자치권 보장’ 법제화 시도
그래도 변화의 주체는 학생이 돼야

 

하지만 학교는 꿈쩍도 않고 있다. 정작 대학가의 문제를 정책적으로 조율해야 할 교육부는 어디까지나 “대학 구성원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학내 개입을 꺼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반값등록금국민본부 등 시민단체 일각에선 고등교육법 등 등록금 관련 법률 개정안 입법 청원을 추진하면서 ‘학생자치권의 보장’을 조문으로 삽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 집단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가 여전히 중론을 이루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투표로 뽑힌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의견을 학교 측에 전달해 학칙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부터 관심을 두고 문제 제기를 하는 동시에, 전체 학생들의 힘을 모아 대학가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학교 당국을 압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학생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글․취재/ 구본철 조해성 기자 indong9311@naver.com

정리/ 이승한 최용우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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